“저는 유비이고, 이쪽은 장비라고 합니다. 성질이 급하고 불같기는 하지만, 악한 마음은 없는 자이니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유비가 두 손을 모으며 공손하게 인사하자 사내도 예를 갖추며 말했다. “저는 관우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어디 가서 술이라도 한 잔 하시지요.” 유비가 애써 사양하는 관우를 이끌어 주막으로 데려갔다. “관 공께서는 이런 시골까지 무슨 일로 오셨소?”
유비가 관우의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관우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 더니 입을 열었다.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관리를 내 손으로 죽였소. 그 바람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떠돌고 있으니 떳떳한 처지가 아니올시다.” 관우는 왠지 유비에게 믿음이 가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때 묵묵히 술만 마시던 장비가 불쑥 끼어들었다. “대체 어디서 무예를 배우셨소?" “떠돌던 중에 여기저기서 배운 것뿐이오. 그러는 장 형은 어디서 배웠 기에 내 청룡언월도를 모두 막았소? 지금껏 숱 하게 싸웠지만 장 형 같은 사람은 처음이오.”
관우가 장비의 무예에 감탄한 듯 말을 던졌다. 어느새 둘은 좀 전의 싸움을 잊고 서로의 무예를 칭 찬하며 술잔을 주고받았다. 이처럼 유비에게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다. 한 명이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싸움이 유비의 말 몇 마디에 마무리되고, 둘을 한자리에 앉혀 화해시켰으니 말이다.
장비가 유비를 따른 지는 이미 여러 날이 된 터였다. 하루는 장비가 술에 취해 고을 관리 한 명을 죽을 만큼 때렸다. 장비는 곧장 관아로 끌려갔고, 목숨이 날아갈 위기에 처하고 만 것이다. 그때 장비를 살려 준 사람이 바로 유비였다. 장비가 비록 술에 취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사고를 치지만, 평소에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그 뒤로 장비는 유비 를 형님으로 깍듯이 대접했다. 관우 또한 이날 술자리를 계기로 유비의 사람됨을 알아보았고, 세 사 람은 금세 붙어 다니는 사이가 되었다.
복숭아밭의 맹세
유비 일행이 살고 있는 유주 땅 탁현에도 황건적을 물리칠 의병을 모집했다. 유비는 숨을 내쉬었다. “후유......” 집하는 방이 붙었다. 유비는 한참 동안 방을 바라보더니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쉬었다. “거참, 한숨만 쉬어서 어떻게 이 나라를 구하겠소 비가 뒤를 돌아보니 장비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재산을 다 내놓을 테니, 그걸로 군자금(군대에 필요한 돈)을 마련해 봅시다.”
“놀고 먹는줄 알았더니 언제 재산을 모았느냐. 장하구나! 관 형을 불러 함께 의논해 보자꾸나.” 유비는 크게 기뻐하며 관우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관우도 황건적의 횡포를 듣고 속을 끓이던 참이라 뛸 듯이 기뻐했다. 세 사람은 젊은이들
을 모아 의병에 지원하기로 뜻을 모았다. “큰일을 치르기에 앞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냅시다. 또 우리끼리 형제의 의를
맺는 건 어떻소? 유 형이 황실의 종친이니 맏이가 되기로 합시다.”
관우가 제안했다.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따스한 어느 봄날,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은 복숭아밭에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의형제가 되기로 굳게 맹세했다.
우리 세 사람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나지는 않았나이다. 하지만 평생 의리를 지키고 죽을 때까지 형제의 정을 나누겠습니다.” 이 맹세로 세 사람은 형제가 되었고, 유비와 관우, 장비는 함께 큰 뜻을 펼치기로 굳게 다짐했다.
삼 형제는 곧바로 저잣거리로 나가 황건적을 무찌를 의병을 모으기 시 작했다. 사람들이 모이고, 무기와 말도 모여 갔다. 어느덧 유비, 관우, 장 비를 중심으로 오백 명의 의병이 모였다. 유비를 우두머리로 한 의병단. 은 탁현을 떠나 황건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삼 형제가 이 르는 곳마다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 그 무렵, 유비뿐 아니라 훗날 영웅으로 자리매김할 강동(장강의 남쪽 지 방)의 손견, 기주의 원소, 연주의 조조 같은 인물들도 곳곳에서 공을 세우 고 있었다. 유비는 훗날 함께 어깨를 겨루게 될 이들과 스치듯 만남을 가 졌다.